인간은 사회문화적 존재인 동시에 심리적 존재이다. 공동체 내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면서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 욕구를 지닌 존재인 것이다. 심리인류학은 이러한 인간의 사회문화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이 조우하는 양상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 심리인류학은 사회문화적 환경이 개인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의 문화사회적 행동에 내재하고 있는 심리적 토대를 연구한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초 인류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성장할 때 심리인류학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는데, 여기에는 마가렛 미드(Magaret Mead),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등 '문화와 인성' (culture and personality) 학파로 불리던 학자들이 크게 공헌했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문화와 인성 학파의 연구가 과도한 일반화 등으로 비판받으면서 심리인류학도 침체기를 겪었으나, 1970년대 이후 인지인류학, 자아 및 감정 연구, 문화적 스키마(cultural schema) 연구 등 새로운 관점과 접근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 심리인류학은 문화적 맥락에서 인간의 심리적 경험을 연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문화와 개인 간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에 주목한다. 또한 문화인류학의 다른 하위 분야들과 달리 문화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보편성에도 관심을 가진다. 심리인류학은 심리학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며, 심리학 이론을 적극 수용하며 발전해 왔다. 인류학자들이 인간의 심리 과정과 문화의 상호작용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타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이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감정, 생각, 욕구를 경험하고 표현하는 현지인을 마주하면서부터였다. 예를 들어, 브로니슬라브 말리노브스키(Bronislaw Malinowski)는 트로브리안드 섬(Trobriand island)에서의 현지조사 과정에서 서구사회와 달리 트로브리안드 사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매우 우호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모계사회인 트로브리안드에서는 아버지가 권위를 가진 서구사회와는 달리 아버지의 역할이 친밀한 혈연으로만 국한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자신이 속한 서구사회에서의 남자아이와 아버지의 적대적 관계는 모든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 아닌 권위의 구조와 관련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초기 심리인류학 연구의 대표적 학자인 마가렛 미드는 인간 심리의 문화적 다양성과 문화가 개인의 심리적 과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였다. 미드는 사모아 사회에 대한 연구에서 사모아 청소년들이 미국 청소년들과 달리 사춘기를 순탄하게 넘어가는 이유를 사모아 사회의 문화적 환경과 연관 지어 설명하였다. 미드는 사모아 청소년들은 누군가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발달하지 않는 확대가족에서 성장한다는 점, 사춘기에 성적인 경험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 등의 사모아 사회의 문화적 환경에 의해 사모아 청소년들이 보다 순탄하게 사춘기를 보낸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미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춘기 문제가 생리적 변화로 인한 보편적 현상이라기보다는 미국 사회의 문화적 환경에 의해 발생한 특수한 현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개인들의 사회관계와 감정을 보편적 심리 체계로 설명하는 심리학과 달리, 심리인류학은 심리적 경험의 문화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개인의 심리가 사회문화적 구조 및 맥락과 연관되어 있음에 주목한다. 그러나 심리 인류학자들이 인간 심리의 보편적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심리적 과정의 문화적 다양성에 기반하여 보편적 인간 심리에도 관심을 가진다. 인류학자들은 다양한 문화의 심리적 경험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 결과를 통해 인간 심리 체계의 보편성과 범문화적 특성을 연구하기도 한다. 인성 연구는 심리인류학의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인성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회에는 다양한 인간의 인성 특질 중 보다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특질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야노마모(Yanomamo) 부족은 맹렬함과 공격성을 이상적인 남성의 인성으로 간주한다. 사회문화마다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인성적 특질에는 보상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은 특질들에는 아무 보상이 없거나 심지어는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문화적 환경 때문에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특질을 얻고자 노력한다. 즉, 개인은 다양한 인성적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회화' 또는 '문화화' 과정을 거쳐 타고난 인성을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특정한 방향으로 일치시켜 간다. 이로써 한 사회 내에는 인성적 측면에서 일정 정도 동질성이 생기는데, 이를 연구한 학자들이 후에 문화와 인성 학파라고 불렸다. 문화와 인성 학파의 대표적인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콰키우틀(Kwakiutl)족과 주니(Zuni)족의 인성 유형을 연구했다. 연구 과정에서 베네딕트는 두 부족이 매우 상반된 인성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였고, 상반된 특성을 가진 두 사회의 주된 인성을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사용한 개념인 디오니소스적, 아폴론적 인간상이라는 용어를 차용하여 구분하였다. 이처럼 베네딕트는 각 문화를 인성적 특질에 따라 유형화하여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베네딕트의 연구는 인성을 개인의 선천적인 심리 체계로 간주하는 기존의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인성과 문화의 필연적인 상호연관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문화마다 인성 유형이 다를 수 있다는 경험적 연구 결과는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널리 알리는 데도 기여하였다. 하지만 문화별로 인성 유형을 유형화하는 과정에서 문화 내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간과하고 문화를 정형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초기 문화와 인성 학파의 연구가 주로 각 문화를 유형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후의 연구들은 문화 내 개인들의 다양한 인성적 특질, 개인적 심리와 문화 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최빈 인성(modal personality) 연구는 각 문화의 인성을 유형화하기보다 문화 내에서 나타나는 인성적 특질들의 빈도와 분포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편 문화와 인성 학파의 연구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국민성 연구를 통해서였다. 국민성 연구는 현대 국가 내 구성원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인성적 특성을 연구한다. 특히 사회의 관습이나 교육이 국민성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하여, 국민성이 유전적 산물이 아닌 사회문화적 특성임을 주장한다. 인성 외에도 자아와 감정, 사람됨 등이 심리 인류학의 주요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최근의 심리인류학 연구들은 심리적 경험과 문화가 만나며 수반되는 역동성과 다층성에 관심을 가진다. 문화 내 개인에 대한 관심이 심리인류학의 고전적인 연구 분야임을 고려할 때, 문화에서 행위자로서의 사람에게 주목하는 최근 인류학 연구에서 심리인류학은 다양하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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