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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정치인류학 - 정치권력에 대한 문화적 상상

by seawworld 2024.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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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문화인류학에서 정치는 강제력을 가지는 법적 실체인 국가(the state)의 작동만 아니라 일상에서 권력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권력관계는 개인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 선후배, 직장 내 상사와 직원 등의 사적인 사이에도 힘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정치와 권력의 개념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 학자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로, 그는 국가와 법 등의 제도 외에도 일상에서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판옵티콘(panopticon) 모델로 설정된 감옥은 감시자가 부재하더라도 죄수가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게 만든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관계는 일상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작동하므로 개인적인 것(the personal)도 얼마든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신체에 대한 통제만이 권력의 유일한 형태인 것은 아니며, 근대사회에서 권력은 주권(sovereignty)이나 인구집단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인 통치성(governmentality)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작동한다. 따라서 현대에 들어 권력 개념이 확장되었다 하더라도 좁은 의미의 정치제도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중요하다. 정치인류학(political anthropology)은 권력관계의 형성, 유지, 변형에 관련된 공적인 제도와 실천을 비교문화적(cross-cultural) 관점을 적용하여 연구하는 분야로, 민족지적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현재에는 지구화 시대에도 상당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와 관련된 문제를 민족지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정치인류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국가 이전의 정치체계를 군단-부족-추방 사회로 분류하고 이러한 정치체계로부터 국가로의 전환을 탐구하는 진화론적 연구는 197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또한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국가 없는 사회'에서 사회적 질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분석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이는 국가가 아닌 사회제도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5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는 비산업사회의 정치체계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졌다. 이후 '국가 없는 사회'에 대한 연구는 쇠퇴했으며 1960년대 이후 탈식민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국가와 '국가 없는 사회'를 별개로 취급하는 흐름도 점차 단절되었다. 대신 근대 국가와 '국가 없는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가 정치인류학의 주류가 되었다. 더불어 국가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국가에 저항하는 양상도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현재는 국가 그 자체가 문화인류학의 분석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통치 논리로 자리 잡은 이후 국가의 재분배기능과 인구에 대한 통제의 변화 양상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우선 '국가 없는 사회'에 대해 살펴보자. '국가 없는 사회'에 대한 문화인류학의 첫 번째 해석은 구조기능주의적 설명이다. 구조기능주의적 접근은 아프리카 부족사회에서 친족집단인 종족(lineage)이 지역별 거주 단위에 통일성을 부여하여 사회적 통합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전체 종족 내의 분절적인 종족집단(segmentary lineage) 들이 결합하고 분열하는 역동적 과정을 통해 사회 질서가 유지된다. 또한 분절 집단들은 신화를 통해 귀속감을 느낄 수 있다. 한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신화는 직접적인 친족관계가 아닌 구성원들 사이에도 이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국가라는 통합적 정치 제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분절 집단과 종족 전체가 통일된 정치적 단위를 이루는 것이다. '국가 없는 사회'에 대한 두 번째 해석은 '국가 없는 사회'와 '국가'를 완전히 구분되는 개별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내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프로세스 접근법이다. 프로세스 접근법의 대표적인 연구는 에드먼드 리치(Edmund Leach)의 《버마 고산지대의 정치체계》이다(리치 2016). 리치는 카친족 정치단위의 구조적 변동에 주목하여 '국가 없는 사회'도 중앙집권화된 권력이 존재하는 국가와의 연속성 속에서 파악해야 하는 유동적 정치단위임을 보여주었다. 국가 없는 사회'에 대한 세 번째 해석은 '국가 없는 사회'를 중앙집권적 권력의 등장에 저항하는 정치체계로 보는 구조주의적 관점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가 피에르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이다(클라스트르 2005). 클라스트르는 국가의 부재가 정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원시사회'가 중앙집권화된 권력의 등장에 저항하여 나타난 결과라고 본다. 문화인류학에서 상징과 의례는 집단의 구성원을 통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며, 국가 역시 상징과 의례를 통해 형성된다고 본다. 근대 민족국가에서도 민족(nation)을 국가(state)와 결합기 위해서는 상징적 실천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민족의 구성원들은 공통된 정체성을 획득한다. 민족국가는 한 민족이 정치적 자율성을 보장받고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신념인 민족주의(nationalism)에 의해 탄생했다. 민족국가는 '국가 없는 사회'나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제국(empire)에 비해 비교우위를 누리는데, 이는 민족국가의 구성원들이 국가에 강한 애착심을 갖는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근대 이후 인쇄자본주의가 발달하며 일정 범위의 사람들이 공통된 민족-활자어(national print-languages)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이 집단은 실제로 만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어를 공유하며 서로 공통의 정치적 운명에 처한 공동체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민족국가의 탄생에는 문화적 개입이 있었으며, 민족국가는 구성원들의 애착심을 통해 인구와 영토를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정치기구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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