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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젠더 인류학 - 젠더와 문화

by seawworld 202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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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학에서는 생물학적 차이를 나타내는 섹스(sex)와는 구별되는 개념인 젠더(gender)를 연구한다. 젠더는 역사적·문화적으로 구성되는 성별 차이를 의미하며, 인류학에서의 젠더 연구는 문화를 구성하는 핵심 중 하나인 성별 차이에 주목하여 문화의 다양성을 해석한다. 인간의 문화적 실천에 주목하는 인류학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어떻게 여성과 남성에게 사회적 성역할을 배치하고, 여성성과 남성성에 서로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인류학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차라는 젠더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각 사회나 문화권마다 젠더 역할이나 그 수행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여성성과 남성성 내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성적 지향의 다양성, 사회마다 '제3의 성'의 지위와 인정 체제가 다양하다는 점을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증명하여 젠더 다양성(gender diversity)을 기록하기도 했다. 나아가 인류학은 특정 사회에서 성적 차이가 어떻게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실천되는지 분석하고,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젠더 위계를 고찰하기도 한다. 젠더 인류학은 문화 내의 인간이 어떻게 특정 형태의 성별화된 정체성을 획득하고 실천하는지에 주목한다. 이러한 젠더 인류학은 1970년대 이후 성적 차이, 성적 위계, 성 정체성에 대한 인류학적 관심이 급증하면서 인류학의 분과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이후 기존 인류학적 지식이 서구 중심성, 남성 중심성, 계급 중심성에 대해 비판 받으면서 소외되거나 왜곡되어 왔던 여성의 경험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여성 인류학'이 등장했다. 이후 1970년대 페미니즘 인식이 인류학 분야에도 확산하면서 페미니즘 관점으로 인류학 주제들을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인류학이 발전하였다. 페미니스트 인류학은 여성 인류학의 영향을 받아 발전되었으며, 이 둘은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을 때도 있다. 1970년대 이전에도 여성 인류학자에 의한 젠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인류학이 학문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19세기 중엽에는 타지역에서 자유롭게 현지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여성은 드물었기 때문에 1970년대까지는 젠더 인류학이 소수의 인류학자가 여성의 삶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여성 인류학에 머물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권력과 실천을 강조하는 학계의 흐름에 맞춰 성적 위계와 불평등, 불균형을 탐구하는 페미니스트 인류학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 1970년대에는 제2의 물결(the Second Wave)이라 불리는 여성운동이 광범위하게 확산하였고, 대학에서는 여성학(Women's Studies) 프로그램이 개설되기 시작하며 지식체계에 내재하여 있는 젠더 무감성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젠더 무감성이란 젠더에 근거한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젠더에 의한 성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특정 문화를 연구하고 분석할 때 젠더가 중요한 변수나 고려 요인이 되어야 함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즘 인식의 도래는 페미니스트 인류학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페미니스트 인류학은 1974년에 출판된 《여성·문화·사회》로부터 기원하였다. 이 책은 전 세계의 민족지적 사례들을 소개하며 성차는 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젠더' 개념을 확립하고 페미니즘 운동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이 책은 단순히 기존 연구에 여성 경험을 더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으며, 남성과 여성 간의 권력 불평등의 문제나 기존의 인류학적 지식에 내재 남성 중심성을 비판하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해석과 실천적 지식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로잘드와 오트너 등 일부 저자들은 남성 지배의 기원과 보편적인 성적 불균형의 원인을 탐구하였으며 몇몇 저자들은 여성의 행위자성에 주목하여 젠더의 다양한 문화적 구성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 책이 출판된 후 성차는 '권력'의 산물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페미니스트 인류학이 탄생했으며 이는 당시의 페미니즘 이론과 결합하며 훗날 크게 발전한다. 현대의 페미니스트 인류학은 아직도 인류학에 내재하여 있는 남성 중심적 관점을 비판하고, 여성을 '단일한 범주'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종, 민족, 국가, 계급의 차이에 따른 여성들의 다양성과 권력관계에 주목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다. 젠더 인류학의 고전적인 연구 분야 중 하나는 섹슈얼리티(sexuality)이다. 어떻게 사람들이 '성적 존재'가 되고, 성과 관련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지의 문제는 인류학의 오랜 관심 분야였다. 초기 연구는 주로 특정 사회에서 언제, 어디까지, 누구와의 성행위를 허용하는가 등을 관찰하며 가족과 친족 개념의 구성에 대해 연구했다. 1970년대까지 인류학의 섹슈얼리티 연구가 이성 간의 성에 대해서 집중하면서 다양한 성애적 경험을 제대로 연구하지 못했지만, 이후 '의례적 동성애' 개념을 만들어낸 길버트 허트(Gilbert Herdt)의 연구(1987) 등은 다양한 성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인류학 내부에서 동성애를 포함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하위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퀴어 연구가 다수 수행되었다. 최근의 인류학적 연구들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실천이 본질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수행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익숙한 성역할이나 성 고정관념에 대항하는 젠더 해체가 일어나고, 다양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지닌 사람들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젠더 인류학은 실천적 지식으로 큰 의미를 지니며 사회에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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