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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미디어 인류학 - 미디어와 대중문화

by seawworld 202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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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는 '중간'(middle)을 뜻하는 라틴어 medius에서 비롯된 단어로 중간에서 무엇인가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생활의 기록이나 누군가의 생각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책, 그림, 언어, 문자 등이 넓은 의미에서 '미디어'에 포함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인간 생활과 미디어는 사실상 별개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인류학 학문 영역에서 미디어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 초부터이다. 인류학이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대중매체의 급격한 성장과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등 대중매체가 빠르게 성장하였고, 이들은 인간 삶에 깊게 녹아들어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그 중요성이 커졌다. 따라서 인류학자들 역시 대중매체에 의해 전달되는 콘텐츠들의 생산, 유통, 소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인류학에서 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확산이라는 '현대적' 양상에 주목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연구 대상 사회의 사람들에 대한 일상적 관찰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가 90년대 초반 미디어가 전 세계를 연결하고 있는 현상을 묘사하면서 사용한 '미디어스케이프(mediascape)'(아파두라이 2004)를 더 이상 인류학자들이 무시할 수 없게 되면서 미디어 인류학이 출발한 것이다. 미디어 인류학은 대중매체, 대중문화 콘텐츠 등에 주목하는 학문 특성상 인류학 외의 커뮤니케이션 이론, 사회학, 영화학, 문학 등 다양한 학문적 경향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인류학이 일방적으로 타 학문의 영향을 받기만 한 것은 아니며,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의 해석인류학적 입장이 대중문화 연구에 기여하는 등 인류학이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나 대중매체 연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미디어 인류학의 대표적인 연구 주제로는 1. 특정 미디어 또는 미디어 상품(콘텐츠)의 생산 및 이용과 소비, 2.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이용과 활용, 3.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생겨난 사회적 변화, 4. 미디어 콘텐츠 분석과 문화비평이 있다. 이러한 연구 주제들에 대하여 미디어 인류학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대중매체에 의해 전달된 이미지나 소리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는가? 사람들은 미디어로 전달되는 콘텐츠들에 내재된 이데올로기나 정치적·경제적 문제 등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통해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상호작용은 무엇이며 이들은 어떻게 기존의 사회 질서에 영향을 주는가? 등이 미디어 인류학의 포괄적 주제들이다. 미디어의 인류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토착민(indigenous people)들의 미디어 사용이 두드러졌던 1980년대부터이다. 이 시기 비서구 사회에서는 서구의 미디어 콘텐츠들이 전통적인 사회를 서구 사회와 유사하게 획일화, 균질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착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려는 권력 구조에 저항하고자 미디어를 이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토착 미디어(indigenous media)라 부른다. 캐나다의 이누이트(Inut)들이나 호주의 애버리진(Aborigine)이 자신들의 생활세계, 역사, 문화를 알리고자 방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콘텐츠를 방송 또는 보급한 것(Ginsburg 2002)이 토착 미디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호주 애버리진 출신의 피디(PD)나 영화 제작자는 그들의 미디어 콘텐츠에 과거와 현재 호주의 생활세계를 포함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는 자신들의 땅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고, 토착민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외부 권력에 항거하는 역할을 했다. 토착 미디어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들은 토착 미디어 활동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며, 어떤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무엇을 강조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토착 미디어를 포함하는 미디어 산업의 제도적 측면에도 주목했는데, 토착 미디어도 일종의 미디어로 미디어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상업 자본의 영향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류학적 미디어 연구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미디어 콘텐츠의 생산 또는 소비를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생산자 혹은 수용자들이 콘텐츠를 어떻게 문화적으로 해석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집트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정보생산자들과 '함께' 시청하며 드라마의 내용이 시청자들의 문화적 환경과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는지를 연구한 릴라 아부루고드(Lila Abu-Lughod)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는 "텔레비전은 동일한 문화적 텍스트가 다른 맥락에서는 상이한 의미를 명백히 보여준다"(아부루고드 2003: 243)고 말했다. 텔레비전 멜로드라마를 사회와 가족의 위계질서에 놓인 자신들의 처지와 연관 지어 시청하는 인도여성들에 대한 연구(Manekekar 1993), 중국의 개혁개방과 천안문 사건으로 촉발된 젠더와 계급 문제가 드러난 드라마 <갈망(渴望)>에 대한 연구(Rofel 1994) 등이 또 다른 사례이다. 이들은 미디어의 수용과 해석에 대한 참여관찰의 결과라는 점에서 미디어 에스노그라피(media ethnography)라 할 수 있다. 특정 장르나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도 많이 수행되었는데, 인도 남부 타밀 영화에 대한 사라 디키(Sara Dickey)의 연구는 영화배우가 정치인이 되고 영화 팬들이 영화배우를 지지하고자 팬덤 등을 만드는 것을 소개하며 영화가 다양한 삶의 영역에 영향을 미침을 보여주었다(Dickey 1993). 미디어 인류학의 연구들은 그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큰 맥락에서 미디어 인류학은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자와 수용자의 삶의 문화적·사회적 맥락과 연관 지어 연구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에 대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대중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대중적인 예술, 오락, 각종 콘텐츠와 이와 관련된 수용자들의 담론 및 행위양식'이라는 대중문화의 일반적인 정의에 따르면, 대중문화는 미디어 인류학의 연구대상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성장하고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통한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오늘날 대중문화는 일상생활에 깊게 자리 잡았다.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장르를 중심으로 실행되었으나, 최근에는 SNS 플랫폼과 유튜브로 대표되는 영상 콘텐츠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며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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