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모건 - 일생, 연구, 인류학적 공헌
흔히 빅토리아 시대의 진화론자들은 인류학 현지조사나 현지 사람들과의 역동적인 상호작용과는 거리를 두고, 도서관 연구 자료에 의존해 결론을 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루이스 모건(Lewis Henry Morgan, 1818~1881)은 예외였다. 모건은 인디언의 법률소송을 대리하거나 이로쿼이(Iroquois) 부족연맹의 하나인 세네카(seneca)족 출신인 파커와 깊게 우정을 쌓고 교류하는 등 인디언들과 유대를 쌓으며 민족지에 큰 매력을 느꼈고, 다양한 이로쿼이 집단을 수차례 직접 방문했다. 또한 모건은 캔자스와 네브래스카의 아메리카 토착 집단(1859~60), 미주리 북부(1862), 아메리카 남서부(1878)에서도 집약적인 현지조사를 포함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현지 관찰과 통문화적(cross-cultural) 자료를 통합하여 위대한 인류학적 지식과 정보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모건은 1818년에 태어나 서부 뉴욕 변방에서 상장하였으며, 미국의 경제적 성장과 몰락, 시민전쟁을 겪었다. 법률가로 교육받아 활동하였고, 보수적 성격과 정치 성향을 가졌다. 그는 1842년에 변호사가 되었으나, 당시 장기간의 경제침체로 인해 사업이 부진해지자 금주(禁酒), 고대 그리스와 19세기 중반 미국의 유사성 비교 등에 대하여 강연과 논문 저술에 매진했다. 이후 1844년 후반에 모건은 '고르디우스의 매듭 동맹'(Order of the Gordian Knot)이라는 사교 클럽에 가입하였고, 이 모임은 훗날 모건에 의해 '이로쿼이 대동맹'(Grand Order of the Iroquois)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840년대 모건은 이로쿼이 연구에 큰 매력을 느껴 《이로쿼이 부족연맹》(League of the Iroquois)를 완성했다. 《이로쿼이 부족연맹》은 이로쿼이족의 종교, 정부, 사회조직, 언어, 물질문화, 가내 건축, 지명에 대한 모건의 연구를 요약한 것으로, 구체적인 민족지 자료를 포함하는 매우 가치 있는 문헌이다. 이후 모건은 1850년대 후반 민족학(ethnology)에 크게 관심을 보이며, 이로쿼이의 친족과 사회조직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연구했다.
모건은 1857년 미국 학술진흥원에서 '이로쿼이의 출계율'에 대한 논문을 게재했다. 모건은 이로쿼이 친족체계에 대해 연구하며 미국 사회와는 구별되는 이로쿼이 사회 친족체계의 특성을 다수 관찰하였고, 나아가 이로쿼이의 정치조직은 친족의 확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후 1859년 모건은 오지브와(Ojibwa)족, 다코타(Dakota)족, 크릭(Creek)족도 이로쿼이족과 유사한 친족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모건은 친족이라는 공통적인 체계에 반영되는 여러 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류학자 화이트에 따르면 모건의 대단한 업적은 "친척을 호명하는 관습이 과학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인데, 그 발견은 모건의 저작 《인류의 혈연 및 인척 체계》(Systems of Consanguinity and Affinity of the Human Family)에 실려 있다.
이후 모건은 스미소니언 연구소와 국무성의 지원을 받아 친족체계에 대한 범세계적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친족 용어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설문지를 전 세계의 영사관 직원, 선교사, 학자들에게 발송했고, 조사 결과를 자신의 현지연구와 통합하여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고대 및 현대 유럽 총 139개 집단에 대한 친족 자료를 완성하였다. 모건은 모든 친족체계가 크게 기술적(descriptive) 체계와 유별적(classificatory) 체계 두 집단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기술적 체계는 직계친과 방계친을 구분하여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는 동일한 용어로 지칭하지 않는다. 반면 유별적 체계는 직계친과 방계친을 동일한 것으로 판단하며 세대와 성은 구별하지만,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 어머니와 어머니의 자매를 지칭할 때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다. 모건은 조사를 통해 총 여섯 개의 친족체계군을 발견하였는데, 세 개의 기술적 체계(셈, 아리아, 우랄)와 세 개의 유별적 체계(말레이, 투란, 가노완) 확인하였다. 모건에 의하면 세 기술적 체계와 세 유별적 체계의 구분, 즉 양 체계의 구분은 문명화된 국가와 문명화되지 못한 국가 사이의 경계선과 거의 일치한다. 모건에 따르면 기술적 체계는 결혼 체제가 단혼제(monogamy, 일부일처제)에 기반을 둘 때 등장하며 유별적 체계는 복혼제(polygamy, 일부다처제 또는 일처다부제), 공동혼(communal marriage), 난혼(promiscuity)이 존재하는 곳에서부터 추론된다. 모건은 난혼 상태를 전제한 유별적 체계는 하등동물에 가까운, 우리가 인간의 상태라고 여기는 데 익숙해진 것보다 훨씬 미개한 조건의 인류에게서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모건은 친족체계들로부터 각각의 사회관계를 유추하고, 이를 '가장 원시적인 것'에서부터 '가장 개화된 것', 난혼에서 단혼까지 연속선상에 배열하고, 난혼 사회가 오늘날 존재하는 단혼 기반의 핵가족으로 발전하는 이유를 사유재산의 발명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모건에 따르면 문명을 이룬 후 재산권의 상속으로 인해 유별적 체계가 기술적 체계로 대체된다. 재산이 성립하고 그 권리가 양도되며, 직계후손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관습이 확고해지면서 기술적 친족체계가 발달하고 핵가족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건은 사회구조와 경제를 연결하여 설명했다. 모건의 논리에 대한 여러 비판이 존재하지만, 모건이 친족체계의 중요성과 친족체계가 경제·정치 등의 다른 사회 측면과 맺는 관계에 대하여 최초로 탐구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모건의 대표적인 저작 《고대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사회의 발전을 진보의 연속선상에서 연결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모건에 따르면 일부 인종은 야만 상태에 있고, 다른 일부는 미개(barbarism) 상태에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문명 상태에 있다. 또한 이 세 가지 상태는 진보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모건은 기술적·사회적 진화도 재산의 개념과 연관 지어, 통치와 재산의 형태에 의해 발달단계들을 정의하였다.
모건의 주장에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건은 인류학에 대한 근원적·영속적 공헌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모건은 친족체계 연구의 중요성을 제시했으며, 체계적이고 전 세계적인 통문화적 연구를 진행했고, 문화적 차이를 문화진화라는 틀에 맞추어 인류학 자료를 조직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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