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에서 가족(家族)이란 다의성을 가진 사회조직이다. 가족은 부모와 자녀라는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단위로 인식되면서도, 사회마다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학에서는 가내집단(domestic group)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가내집단은 집이라는 한 공간 내에서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기 때문에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구성원들이 포함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식구(食口)'라는 용어가 가내집단에 해당한다. 식구는 가족보다 개방적인 용어로, 혈연보다 함께 생활한다는 의미가 강조된다. 또 '가족(family, familia)'이라는 단어는 '하인', 또는 '시중드는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의 파물루스(famulus)에서 비롯되었다. 즉 혈연이 아닌 하인 등의 집안의 일꾼들도 가족으로 여겨졌다는 뜻이다. 혼인한 남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혈연 중심의 집단이 가족의 기본이 되기는 하지만, 혈연이 아닌 다른 요인이나 원리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은 복잡하고도 다의성을 지닌다. 더불어 가족의 구성 원리, 구성 등은 계속하여 변화했으며 미래에도 변화할 것이다. 가족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회집단이며 현재까지도 사회구성의 중심이 되는 집단이다. 따라서 인류학자들은 각 사회에 존재하는 가족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특히 조지 머독(George Murdock)은 핵가족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연구를 통해 주목받았다. 그는 그의 저서 《사회구조》(Social Structure)에서 가족을 "거주를 같이하고, 경제적인 협동 및 자녀의 생산으로 특징지어지는 하나의 사회집단"이라고 정의했다. 머독은 핵가족의 필수적인 기능으로는 단혼을 유지하기 위한 안정적인 성관계, 경제적 협동, 종족 번식, 가치와 규범을 가르치기 위한 자녀의 사회화 과정을 제시했다. 20세기 초중반 인류학과 사회학이 가족을 정의하고 그 성격을 규명하려 시도하면서 인류 사회와 문화가 다양한 만큼 가족의 구성과 작동 원리 등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족 연구도 발전하게 되었다. 가족·친족 연구에서 구조에 대한 논의는 고전적인 주제로 알려져 있다. 가족구조론은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를 핵가족, 확대가족, 직계가족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가족의 형태인 핵가족은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핵가족은 수렵채집사회나 현대산업사회처럼 이동성이 높은 사회에서 주로 나타난다. 핵가족은 자녀들이 성장하여 결혼 후에도 함께 살게 되면 다른 가족의 형태로 변한다. 가족 구성원들의 생애주기에 따라 가족의 형태는 유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가족의 구성과 형태는 시간적 변화를 고려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두 번째 가족의 형태인 확대가족은 혼인한 부부가 둘 이상 함께 사는 가족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부부와 결혼한 자녀가 함께 사는 형태가 많다. 확대가족은 정착 농경사회의 지배적인 가족 형태로 알려져 있으며 가계의 계승과 연속성을 중시한다. 세 번째 가족의 형태인 직계가족으로, 직계가족을 확대가족의 한 유형으로 보기도 한다. 직계가족은 한 명의 자녀가 아버지나 어머니의 지위와 재산을 이어받아 가계를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족의 분류는 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한 사회 내에서도 세 가지 가족 형태가 공존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가족이 세 유형을 모두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1930·1940년대에는 추상적, 관념적 모델로서의 가족·친족 제도 연구 등과 같은 사회조직의 원리를 탐구하는 연구가 많았다면 1950·60년대 이후에는 제도와 원리를 중시하기보다는 실제 사람들의 행위를 중시하는 연구과 활발히 일어났다. 또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특히 산업화와 핵가족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등의 연구가 크게 주목받았다. 윌리엄 구드(William Goode)는 핵가족이 산업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적합한 가족제도라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산업사회에서 확대가족은 비효율적이며 확대가족을 여러 기능을 대신하는 공공기구가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레 가족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이다. 핵가족은 부부 중심이기 때문에 계급적·지역적 이동이 용이하다는 점도 산업사회에서 유리하다고 보았다. 또한 확대가족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은 대체로 집단의 연장자일 가능성이 컸지만, 산업화 이후 이들의 정치적·경제적 위치가 흔들렸다. 젊은 구성원들이 도시나 산업지대로 이동하며 가족 내의 연장자들의 권위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구드를 비롯한 핵가족론자들은 결국 산업사회에서는 확대가족이 해체되고 점차 핵가족으로 일반화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가족제도 변화도 초기에는 핵가족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친족에 대해 살펴보면, 친족은 혈연과 인척으로 결합 집단을 뜻한다. 인류는 친족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공동체 생활을 해왔으며, 다양한 관습법을 만들어 친족 기반의 공동체 생활을 유지했다. 친족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계율(descent rule)을 정하는 것이다. 이는 태어난 아기들의 소속을 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인데 아기의 소속을 '아버지' 또는 '어머니' 또는 양쪽 모두로 정하는 규칙이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출계의 규칙을 부계출계율(patrilineal descent rule)이라 하며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출계율을 모계출계율(matrilineal descent rule)이라고 한다. 부계출계율 사회의 예로는 아기가 태어나면 아버지 쪽의 혈통을 잇는 우리나라가 있으며 모계출계율의 예로는 남성들이 결혼 후 여성의 거주지로 이동하는 북아메리카의 호피족과 이로쿼이족이 있다. 아기의 소속이 부계와 모계 양쪽 집단에 속하는 사회는 공계(cognatic descent) 또는 양계(double descent)로 부른다. 이처럼 사회마다 개인은 출계율을 따라 특정 친족집단의 구성원이 된다. 이상으로 문화인류학에서 논의된 가족과 친족의 개념, 기능 특징 등에 대하여 간략히 알아보았다. 가족과 친족제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보편적인 제도로 알려져 있다. 이토록 오래 가족·친족 제도가 널리 유지된다는 것은 가족·친족제도가 끊임없이 변화해 왔음을 시사한다. 현대사회에서도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가족과 친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보수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개방적 태도로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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